정부가 미국 워싱턴DC에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업무를 전담할 상주 사무실 설치 방안을 검토한다. 양국 조선 협력을 가속화하기 위해 미국 현지에 인적 교류 거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17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한미 조선 협력 업무를 전담하는 미국 내 상주 사무실을 두기 위한 예산 편성을 논의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한화오션·삼성중공업 등 국내 민간 대형 조선사들은 필요시 자체 비용으로 주재원을 둘 수 있지만 양국의 조선 협력이 중소기업과 학계까지 확대될 경우 미국에 베이스캠프 역할을 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또 미국 현지 싱크탱크가 한미 조선 협력 방안이 선박 유지·보수·정비(MRO)를 넘어 조선소 인수와 선박 공동 생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만큼 현지에 사무실을 꾸려 대응력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사무소 설치가 확정되면 워싱턴DC에 있는 KOTRA 건물에 입주하는 방안이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마스가는 한두 건의 굵직한 투자나 보증으로 채울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라며 “다양한 협력 사업이 진행될 텐데 이를 지원하기 위한 시스템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미국 내 조선 인력을 양성하고 조선 산업 생태계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중견기업이나 국책연구소, 학계의 인력도 미국을 오갈 수 있는데 이들을 지원할 베이스 캠프가 현지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미 한미 조선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주요 조선사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 내 조선업 담당 부처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정부가 미국 내 마스가 전담 사무소를 설치하려는 이유 중 하나다. 조선 산업을 총괄하는 미국 내 부처는 상무부지만 산업통상자원부의 ‘조선해양플랜트과’처럼 명확한 담당 부서는 없는 상황이다. 미국 내 조선업이 사실상 붕괴한 탓에 발생한 일이다. 한미 관세 협상 과정에서 담당자를 지정해주기로 했지만 사안별로 다른 사람이 지정되는 등 혼선을 빚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 미국 조선업 부흥을 위해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내 조선업 담당 조직을 만들었지만 이후 NCS 조직이 구조조정되면서 힘이 빠졌다. 산업부 관계자는 “협력 아이디어를 내도 미국 행정부의 누구와 이야기해야 하는지 모호한 상황”이라며 “미국에서 상주하며 꾸준히 행정부와 접촉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조선 협력 방안이 다양한 시나리오로 전개될 수 있는 만큼 현지 사무소를 통해 대응력을 높인다는 복안도 깔려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최근 발간한 ‘미국과 동북아 동맹국의 조선 협력 경로’ 보고서에서 네 가지 유형의 조선 협력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 선박 MRO 위탁 △동맹국의 미국 조선소 인수 △미국과 동맹국의 군함 공동 생산 △동맹국 조선소에서 건조된 함정 구매 등이다. 한국 기업이 미국 조선소를 추가로 인수하거나 한국 내 조선소에서 건조한 함정을 미국이 구매하는 방식이 마스가 협력에 포함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보고서가 제시한 협력 방안은 CSIS는 협력 대상 동맹국으로 한국과 일본을 모두 언급했으나 한국에 보다 긍정적인 취지의 평가를 남겼다.
CSIS는 동맹국 기업이 미국 조선소를 직접 인수할 경우 조선 기술과 노하우가 빠르게 미국으로 이전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CSIS는 “동맹국이 직접 미국 조선소를 인수하면 경영 방식 변화, 미국 현지 인력 재교육 및 역량 강화, 선진 기술 이전, 자본 유입 등을 통해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며 “대형 외국 조선사를 모회사로 두면 범용 자재와 부품의 대량 구매가 가능해져 원가 절감 효과도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방식의 한미 조선 협력은 이미 진행형이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말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필리 조선소를 1억 달러에 인수했다. 이후 한화그룹은 설비투자와 인력 양성, 기술이전 등에 전방위적인 투자를 진행하며 미국 조선업 재건에 기여하고 있다. 이에 존 펠런 미국 해군성 장관, 러셀 보트 백악관 예산관리국장 등 미국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잇따라 방문하면서 필리 조선소는 한미 조선 협력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CSIS는 한미가 함께 선박을 건조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설계를 기반으로 하거나 미국과 동맹국이 함께 설계한 함정을 동맹국의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방식이다. 동맹국에 함정을 대량 주문한 뒤 구매하는 방안도 제안됐다. 미국의 선박 건조 역량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고려한 전략이다. 다만 보고서는 미국 조선 산업에 대한 전통적인 보호주의 정책 기조 등을 감안할 때 네 번째 방안이 가장 어렵고 실현 가능성이 작은 것으로 분석했다. CSIS는 “미국은 조선 산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에 의존하는 것과 자국 역량에 투자하는 것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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