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기술탈취 피해기업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형 증거개시제도(디스커버리)를 도입하고 조사과정에서 확보한 자료의 법원 제출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주병기 공정위원장은 25일 서울 구로구 벤처기업협회에서 중소벤처기업 대표들과 현장 간담회를 열고 기술탈취 피해 실태와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간담회는 주 위원장이 취임 후 진행 중인 릴레이 현장 간담회의 세 번째 일정이다.
주 위원장은 “기술탈취가 발생하는 거래관계의 특성상 피해기업은 거래단절 등의 보복 우려로 신고나 소송 제기 시도조차 못하고 가슴앓이만 하는 경우가 많다”며 “설사 소송을 제기한다 해도 혼자 힘으로 증거자료를 확보하기도 어려워 손해배상 등 구제를 받는 것 또한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간담회에 참석한 기업들도 실제 피해 경험을 공유하며 가해기업에 대한 엄정한 제재와 피해 기업에 대한 실질적 보상을 건의했다. 벤처기업협회는 "법 위반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적발 시 부담해야 할 손실이 훨씬 커져야 한다"며 기술탈취 감시·처벌 강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주 위원장은 기술탈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공정위는 우선 기술탈취 반발분야 직권조사를 강화하는 등 업계에 대한 점검을 상시화하기로 했다. 특히 기술탈취 손해배상소송에서 피해 입증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한국형 증거개시제도를 도입하고, 공정위가 조사 과정에서 확보한 자료를 법원에 의무 제출하는 제도 개선도 추진하기로 했다.
한국형 증거개시제도는 특허와 기술 자료 탈취 관련 소송에서 피해 입증 책임을 중소기업에 떠넘기지 않고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가 현장조사한 결과를 증거로 활용하는 제도다. 기업 간 분쟁에서 피해자가 직접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운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법원이 상대방 기업에 기술자료·계약서·내부 문건 제출을 강제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다. 이를 통해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유용하고도 증거 불충분이라는 이유로 처벌을 피하는 관행을 끊겠다는 취지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대기업은 내부 자료가 공개될 수 있어 불법적 기술 탈취가 적발될 위험이 커진다.
주 위원장은 후보자 시절부터 취임 후 최우선 과제로 기술탈취 근절을 꼽을 만큼 기술탈취 근절을 위한 강력한 제도 개편 의지를 여러 차례 드러냈다. 특히 한국형 증거개시제도 도입을 통해 불공정 행위 입증 구조를 여러 번 언급했다. 주 위원장은 당시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서에서 “최우선적으로 한국형 디스커버리 및 법원의 자료제출명령권을 도입하여 기술 유용행위를 근절하고 피해기업에 대한 구제를 강화할 예정이다”고 말한 바 있다.
아울러 공정위는 부과·징수한 과징금을 재원으로 하는 불공정거래 피해구제 기금을 신설해 융자·소송지원 등 실질적 구제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주 위원장은 "앞으로도 현장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경청하고, 준비 중인 기술탈취 근절 대책도 업계와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마련할 것"이라며 "혁신적 중소벤처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상생의 기업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역점을 두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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