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과 여당이 금융 당국 개편안을 전격 철회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25일 기획재정부가 입주한 세종시 중앙동 청사는 하루 종일 침울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번 결정으로 예산 기능이 떨어져 나가더라도 금융정책을 흡수해 옛 ‘재무부’ 부활을 기대했던 제1차관실 소속 공무원들의 충격이 특히 컸다.
기재부 대변인실은 이날 “신설된 재정경제부가 부총리 부처로서 경제 사령탑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며 “경제정책 총괄·조정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장 부처 내부 게시판에는 “차관보실을 없애라” “이럴 거면 경제부총리 타이틀을 떼야 한다” “가만히 있다가 우리만 바보가 됐다” 등 불만과 자조 섞인 글들이 잇따라 올라왔다. 아직까지는 금융위 사무관들이 금융 당국 개편안에 반대하며 ‘오후 6시 정시 퇴근’ ‘국회 요청 자료 회신 거부’와 같은 행동에 나섰던 것처럼 노골적인 움직임은 없지만 새 정부 출범 이후 계속돼온 기재부 홀대론에 쌓인 불만이 언제 분출할지 모른다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내부에서는 이번 결정으로 경제 컨트롤타워로서의 권한과 위상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08년 기획예산처와 재경부가 통합해 출범한 기재부는 예산이라는 강력한 정책 수단을 기반으로 타 부처의 정책을 총괄·조정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왔다. 1차관 라인의 차관보실과 세제실이 2차관의 예산실과 경쟁하면서도 협력하며 정책을 조율해왔다. 그러나 이번 정부 조직 개편으로 예산 기능이 분리된 데다 기대했던 국내 금융정책 이관마저 무산되면서 기재부의 본산인 재경부에는 사실상 세제와 국제금융만 남게 됐다. 타 부처와 정책을 조율할 ‘지렛대’가 사라진 셈이다. 앞으로 재경부가 경제정책방향이나 내수 활성화 방안 등 굵직한 대책을 내놓더라도 타 부처를 조율할 정책 수단이 부족해 경제 총괄 부처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정책 추진 속도도 현저히 둔화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재정과 세제, 금융을 결합한 대책을 마련할 때 두 부처만 협의하면 됐지만 앞으로는 세 부처가 모여야 하는 구조로 바뀌면서 의사 결정 과정이 더욱 복잡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지금도 정책조정국 등 차관보실 사무관들이 타 부처에 업무 협조를 요청해도 전화조차 잘 받지 않는데 앞으로 어떤 부처가 말을 듣겠느냐”고 토로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관세 인상 등으로 전 세계 무역 질서가 흔들리며 정부 주도의 경제정책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되레 경제 컨트롤타워의 힘을 빼는 모순된 선택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단순한 사기 저하를 넘어 공무원 사회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가 재정 건전성을 지키겠다는 소신으로 정책을 추진해온 공무원들이 한순간에 ‘적폐’ 취급을 받으며 조직 해체까지 겪으면서 앞으로 누가 이해관계가 다른 부처의 업무를 적극적으로 조율하겠느냐는 것이다.
전직 경제부처 고위 관료는 “기재부 분리는 공식적으로는 과도하게 집중됐던 권한을 분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왕노릇 한다’는 대통령의 인식이 결정적이었던 것 아니겠느냐”며 “미국의 관세 협상, 내수 침체, 가계부채 관리 등 경제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경제 부처를 쪼갰다 붙였다 하며 에너지를 낭비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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