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도림동에 거주하는 중소기업 임원 김도균씨.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소규모 도매업을 하는 헨리 쿠퍼 씨, 도쿄 인근 지바현에서 매일 도쿄로 출퇴근하는 히스이 고타로씨. 1963년생인 세 사람의 공통점은 두 자녀를 둔 평범한 중산층 가장으로 은퇴를 코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은퇴 시나리오는 너무 다르다.
가장 마음이 무거운 사람은 김 씨다. 살고 있는 아파트 한 채가 재산의 전부다. 금융자산이라곤 주택 대출을 받으며 은행에서 ‘꺾기’로 가입한 중국 펀드가 전부다. 국민연금 예상 수급액은 월 100만원 수준. 갓 취업한 딸과 아직 대학생인 아들 앞으로 들어갈 결혼자금과 학비를 생각하면 은퇴 후 노후를 꾸려가기에 막막하다.
고타로씨의 사정은 양호한 편이다. 국민연금과 확정기여형(DC형) 퇴직연금에다가 우리나라의 개인형퇴직연금(IRP)인 이데코(iDeCo)에 꾸준히 소득 일부를 납입해 온 덕분이다. 일본에서 ‘노후 파산’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거론되는 상황에서도 고타로 씨는 은퇴 후 월 300만원 가량을 꼬박꼬박 지급 받는다.
쿠퍼 씨의 전 재산에서 자가 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은 20%를 조금 넘는다. 나머지는 대부분 금융자산이다. 김도균 씨와 정 반대의 자산 구조를 갖췄다. 쿠퍼씨의 노후대비는 교육의 힘이다. 미국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총 44쪽 분량의 금융투자 교육이 포함돼 있다.
한국은행과 피델리티 일본투자자 교육연구소 등에 따르면 한국, 일본, 미국 가계의 전체 자산 중 금융 자산의 평균 비중은 각각 26%, 71%, 74%이다. 금융 자산의 내용을 보면 미국은 ‘위험 자산’의 비중이 높다. 전체 가계금융자산 73.1조 달러 중 주식투자 비중이 35.4%에 이른다. 이어 연금·보험·신탁이 32.1%, 펀드가 10.7%다. 현금 자산인 예·적금 비율은 13.9%에 불과하다. 한국은 정반대다. 부동산(74%)이 가계 자산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남은 26% 의 절반은 현금이다.
10년 뒤 세 사람의 노후는 어떨까. 쿠퍼와 고타로씨의 노후는 금융자산이란 버팀목이 있다.하지만 김 씨는 거주하는 주택이 전부다. 부모가 자녀들의 결혼·주택구입 등 독립 비용을 챙길 필요가 없는 미국과 일본의 문화와 달리 자녀의 결혼까지 챙기는 한국의 문화를 고려한다면 ‘노후 빈부격차’는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거듭나려면 단순히 국내총생산(GDP) 같은 지표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의 생활비를 공·사적 연금으로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금융 투자 교육 강화와 전면적인 가계 자산의 구조조정, 금융투자 시장 전반의 반성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국내외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유주희기자, 도쿄=김연하기자, 뉴욕=박시진기자 ginge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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