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의 대규모 마진콜로 인한 외환시장 혼란의 재발 방지를 위해 금융당국이 고강도 규제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자 증권업계가 부랴부랴 ‘자율규제’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앞서 은행권에서 ELS 신탁상품의 판매총량 규제를 시행한 데 이어 증권사의 자기자본에 비례한 발행총량제까지 도입되면 ELS 시장이 대폭 축소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증권업계는 획일적인 총량 규제 대신 자체 헤지 비중 축소, 달러 부족 사태에 대비한 외화자산 보유 등 ELS 운용 리스크를 낮출 수 있는 자체 규제안을 마련해 당국에 건의할 계획이다.
12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금융투자협회는 최근 주요 ELS 발행 증권사의 파생상품 담당자들을 소집해 간담회를 열었다. 두 차례에 걸친 간담회에서 금투협은 ELS 발행액 총량 규제를 둘러싼 개별 증권사의 의견을 듣고 개별 증권사가 ‘ELS 마진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방법을 제안해달라고 주문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별로 ELS 발행·운용현황을 공유하고 운용 및 외환시장 리스크를 줄일 방안을 모아 당국에 전달하려는 취지로 회의를 개최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증권사들의 움직임은 금융당국이 ELS 발행량 규제라는 초강수를 내비쳤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당초 지난 3월 대규모 마진콜로 달러 부족 사태가 빚어진 후 당국이 증권사별 ELS의 자체 헤지 비중을 자기자본의 50~100% 이하에서 규제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으나 총량 규제 카드가 불쑥 제기되면서 ‘최악’은 피해야 한다는 업계의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아직 금융위는 “ELS 시장 건전화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이 ELS 리스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3월 글로벌 증시 폭락으로 인한 마진콜 사태 때문이다. 대형 증권사들은 대개 ELS를 판매한 자산의 90%가량을 채권 등 안전자산으로 보유하고 나머지는 기초자산의 변동 위험을 자체 헤지하기 위한 선물 매수 포지션 등의 파생상품으로 구성한다. 유로스톡스50지수·S&P500지수 등 해외지수가 급락하자 선물에서 마진콜이 발생했고 특히 외국 투자은행(IB)들이 달러증거금을 요구하면서 국내 증권사들이 달러를 구하지 못해 원·달러 환율이 급등했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에서 생각지도 못한 ELS가 외환시장을 흔들자 고강도 규제 방안 마련에 나섰다”고 전했다.
증권사들은 일정 수준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총량 규제’는 과도한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규제의 취지가 운용이나 외환시장의 리스크 축소라면 그에 걸맞은 ‘핀포인트’ 규제가 필요하다”며 “획일적인 총량 규제는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증권업계는 자체 헤지 비중 축소와 외화자산 보유 등의 자율규제 방안을 마련해 당국을 설득하는 데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ELS의 자체 헤지를 자기자본의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하고 자체 헤지 자산의 일정 비율 이상은 달러화 채권으로 보유하는 선의 ‘순한 맛’ 규제가 업계에는 최선이 될 것”이라며 “직접 규제를 도입하려면 법령 개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과거처럼 ‘자율규제’ 방식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2015년 홍콩H지수 ELS 발행이 급증하자 금융당국은 ‘자율규제’ 형식으로 증권사들로 하여금 H지수 연계 ELS 발행 총량을 줄이도록 한 바 있다.
한편 규제안에 따라 개별 증권사의 득실이 미묘하게 갈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자체 헤지 상한이 도입되면 자체 헤지 비중이 낮은 증권사는 ELS 추가 발행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중소형 증권사 관계자는 “원화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하는 등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면서 금융당국이 심각하게 사안을 바라보는 듯하다”며 “자기자본 이상으로 ELS를 발행하는 행위는 문제 될 게 없지만 자체 헤지를 통해 그간 수익을 많이 낸 만큼 자체 헤지를 줄이는 방향으로 자정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지혜·이혜진기자 wis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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