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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웃었다...그들의 노래와 춤, 영화와 그림이 있었기에

[2020 문화계 화제의 인물]

봉준호, BTS 큰 상 휩쓸 때마다 다같이 환호

트롯맨 따라 노래 부르면서 잠시 시름 잊고

흥겨운 이날치 국악 장단에 집콕 우울증 날려

손창근 선생의 국보 기증에 문화 소중함 알아

외로운 공연장 끝까지 지지해준 관객도 빛나

감염병의 급습과 폭주로 내내 힘든 한 해였지만 돌아보면 기쁨과 감동의 순간들도 분명 있었다. 노래를 따라 부르며 잠시나마 고통과 시름을 잊었고, 흥겨운 춤사위와 장단에 어깨가 절로 들썩이는 경험도 했다. 타인의 영광에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고, 쉽지 않은 결단에 존경의 마음을 품기도 했다.

이 모든 게 문화의 힘이다.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용기와 희망을 품게 하는 문화의 저력이다. 유례없이 고통스러웠던 2020년, 음악과 영화, 춤과 그림 그리고 사랑과 믿음으로 캄캄한 밤 빛나는 별처럼 반짝이는 위로를 우리에게 건네며 문화계를 밝힌 인물들을 서울경제신문이 정리했다.

2월 9일(현지시간)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배우 제인 폰다(가운데)로부터 작품상 트로피를 건네받으며 감격의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연합뉴스




■오스카 트로피 4개 품은 봉준호

지난 2월 9일 오스카 시상식장에서 트로피를 4개나 거머쥔 봉준호 감독의 환희에 찬 모습은 한국은 물론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장면이다. 봉 감독은 ‘기생충’으로 제92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수상해 4관왕에 올랐다. 이미 칸에서 골든글로브까지 세계 유수 영화제를 휩쓸었을 정도로 유력한 수상 후보이기는 했지만, 한국인이 만든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 무대를 그토록 완벽하게 평정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영어’와 ‘백인 남성’이라는 관행의 장벽이 워낙 견고하고 높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봉 감독은 그 장벽을 무너뜨렸고, 영화 팬들은 환호했다. 미국 CNN는 “기생충이 오스카 역사를 새로 썼다”고 평가하며 ‘2020년을 규정한 문화계 순간들’ 중 하나로 봉 감독의 오스카 수상을 꼽았다.

봉 감독의 당시 수상 소감도 화제였다. 그는 무대 위에서 감독상 후보에 같이 올랐던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각별하게 감사와 존경을 표했고, 이는 수상과 별도로 또 다른 주목 포인트가 됐다.

그룹 방탄소년단(BTS). BTS는 올해 히트곡 ‘다이너마이트’로 한국 가수 사상 최초로 빌보드 핫100 싱글차트 1위에 오르는 등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韓가수 첫 빌보드 싱글차트 1위, BTS

그룹 방탄소년단(BTS)은 올해 세계 대중음악의 본산인 미국에서 그야말로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렸다. 지난 8월 발매한 영어 싱글 ‘다이너마이트’로 한국 가수로는 미국 빌보드차트 역사상 최초로 메인 싱글차트인 ‘핫100’ 1위에 올랐다. 이는 BTS의 음악이 명실공히 미국 주류 팝 음악의 중심부에 들어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BTS는 이미 지난해 월드 투어 공연마다 매진사례를 기록하며 인기의 파괴력을 보여줬지만,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차지할 가능성에 대해선 회의적 시선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BTS는 대중성이 강한 디스코 장르의 영어 가사 곡으로 차트 정상에 오르며 의구심을 날려버렸다. 문화체육관광부는 BTS의 핫100 1위가 약 1조7,000억원의 경제효과를 유발한다고 추산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10월엔 피처링으로 참여한 ‘새비지 러브(Savage Love)’의 리믹스곡이 핫100 1위에 오르며 2009년 이후 처음으로 1·2위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12월에 발매된 스페셜 앨범 ‘BE’의 타이틀곡 ‘라이프 고즈 온’(Life Goes On)은 한국어 노래 최초로 핫100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BTS는 내년 1월 열리는 63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한국 대중가수로는 최초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후보에 오르며 또 한 번의 역사를 쓰려 하고 있다.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트롯맨’ 임영웅(왼쪽부터)·영탁·이찬원·정동원·장민호·김희재. /사진제공=쇼플레이


■‘트롯 열풍’이 낳은 인기스타, 트롯맨

35.7%, 지난 3월 12일 방영된 TV조선의 트로트 서바이벌 ‘내일은 미스터트롯’ 결승전의 시청률이다. 올해 이보다 시청률이 높은 예능 프로그램은 없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트로트의 인기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준 정점이었다.

1·2·3위에 오른 임영웅·영탁·이찬원을 비롯해 김호중, 정동원, 장민호, 김희재 등 결승전에 진출한 가수들은 일제히 스타 덤에 올랐다. 1997년 데뷔한 장민호, 2007년 데뷔한 영탁 등은 긴 무명생활을 일거에 청산했다. 중학생인 ‘트로트 신동’ 정동원과 성악가 출신 ‘트바로티’ 김호중 등 과거 주목받았던 가수들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재조명받았다. 탄탄한 노래 실력과 저마다의 스토리, 예능감까지 갖춘 젊은 트로트 가수들의 등장에 중장년은 물론 젊은 층도 열광했다.



프로그램 종료 이후에도 이들은 ‘트롯맨’이라는 이름으로 TV조선은 물론 각종 방송과 행사, 광고까지 섭렵하며 팬층을 불려 나갔다. ‘미스터트롯 TOP6’ 합동공연 전국 투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일부 취소되기도 했지만 가는 곳마다 매진사례를 기록했다.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의 멤버들. (왼쪽부터)정중엽, 이철희, 안이호, 이나래, 권송희, 신유진, 장영규./사진=난파 제공


■‘조선 팝’의 새 장을 열다…이날치

한국의 판소리와 팝 음악을 맛깔나게 버무리는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는 올 한해 ‘범 내려온다’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화제의 중심에 섰다. 장영규(베이스), 이철희(드럼), 정중엽(베이스) 등 밴드 세 명과 권송희(보컬), 이나래(보컬), 신유진(보컬), 안이호(보컬) 등 소리꾼 네 명으로 구성된 이날치는 2018년 결성돼 새로운 시도와 음악성으로 주목받아 왔다. 특히 한국관광공사가 지난 7월 공개한 이날치×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서울·부산·전주 홍보 영상을 계기로 대중에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됐다. 중독성 강한 음악과 개성 넘치는 앰비규어스의 조화에 힘입어 ‘1일 1범’, ‘국악판 수능 금지곡’ 같은 수식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범 내려온다’는 토끼 간을 찾아 뭍으로 올라온 별주부가 호랑이와 만나는 판소리 ‘수궁가’의 한 대목이다. 지난 6월 발매된 정규 앨범에 실린 어류도감, 신의 고향, 약일레라, 좌우나졸 등 다른 노래들도 수궁가의 주요 대목을 현대적 감각으로 만든 곡이다. “클럽에서 들으며 춤출 수 있는 음악을 만들려다 보니 재료는 수궁가요, 결과는 댄스 음악인 ‘이날치’가 탄생했다.”(장영규) 비록 클럽에서 함께 부를 수는 없었지만, 많은 이들이 곳곳에서 범 내려온다를 듣고 따라 부르며 흥을 만끽한 한해였다.

국보 제180호로 지정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등 300여 점 국보보물급 문화재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손창근 선생이 최고등급인 금관문화훈장의 첫 수훈자가 됐다.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세한도’를 국민 품으로…손창근

개성 출신 기업가 손세기의 아들로 부자(父子)가 대를 이어 문화재 수집에 정성을 들인 손창근(91) 선생이 평생 소장해 온 국보 제180호 ‘세한도’를 올 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앞서 손 선생은 최초의 한글 서적 ‘용비어천가’ 초간본(1447년)을 비롯해 겸재 정선의 ‘북원회수도’, 김정희의 또 다른 명작 ‘불이선란도’ 등 지정문화재급 명품 304점을 2018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고, 2012년에는 50여 년간 나무를 심어 가꾼 경기도 용인의 1,000억 원대 산림 약 200만 평을 국가에 기부하기도 했다. 전대미문의 통 큰 기부로 손창근 선생은 12월 8일 문화훈장 중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그를 청와대로 초청해 환담의 시간을 가졌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 귀양 시절 자신을 잊지 않고 귀한 책을 구해다 주는 제자 이상적을 위해 그려준 불후의 명작 ‘세한도’는 조선 말 권세가 민영휘 집안으로 넘어갔다가 일본인으로 소유주가 바뀌었으나, 소전 손재형이 100일 문안의 공을 기울여 환수해 태평양전쟁의 폭격으로부터 가까스로 구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손세기 집안 소장품이 됐고, 손창근의 뜻에 따라 11번째 주인인 국민 품에 안기게 됐다.

코로나 19 속에서도 적지 않은 관객이 공연장을 찾아 무대를 응원했고, 적극적으로 방역에 협조했다. 사진은 예술의전당이 객석 간 띄어 앉기 도입을 앞두고 진행했던 예행 연습 장면./사진=예술의전당


■빛났다, 객석의 주인…관객

객석의 주인, ‘관객’의 존재감이 그 어느 때보다 빛났던 2020년이었다.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해 공연이 멈춰 서고, 온라인 중계로 전환되는 등 공연계가 직격탄을 맞았으나, 적지 않은 관객이 배우·연주자·아티스트와의 만남을 위해 기꺼이 공연장을 찾았다. 관객들은 ‘이 시국에 공연을 보느냐’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거리 두기 단계 변화에 따른 번거로운 예매 절차에도 불구하고 ‘무대를 멈출 수 없다’는 업계의 몸부림에 힘을 보탰다.

특히 감염 확산 소지가 있는 이벤트에 대해서는 먼저 취소를 요구하는 등 방역에 대한 적극적인 협조와 모범적인 관람 의식이 돋보였다. 코로나 19 확산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에서의 관객 간 ‘N차 감염’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무대를 함께 만든 객석의 주인은 어느 때보다 절실했고, 그래서 그 가치가 더 귀하게 다가왔다.
/문화레저부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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