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글로벌 골프용품 업체인 테일러메이드를 2조원 가량에 깜짝 인수하며 투자은행(IB)업계는 물론 세계 골프시장의 주목을 받은 공동 투자자들 간 적잖은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주요 출자자인 패션기업 F&F(383220)가 테일러메이드의 빠른 성장에 펀드 운용사인 센트로이드프라이빗에쿼티(PE)에 투자금 회수를 조기에 진행, 테일러메이드의 새 주인이 되겠다는 야심을 밝힌 때문이다. 센트로이드PE와 다른 출자자(LP)들은 테일러메이드를 인수한 지 1년도 안돼 펀드 청산을 언급하는 것은 ‘무리한 주장’ 인데다 테일러메이드 지분 가치에 대한 F&F의 평가도 헐값에 그쳐 강력 반발하고 있다.
25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F&F는 최근 테일러메이드 인수를 위해 꾸린 펀드의 주요 출자자인 새마을금고 등에 펀드 청산을 제안했다. 지난해 7월 센트로이드PE가 약 2조 원에 인수한 테일러메이드는 △선순위 인수금융(8200억 원) △중순위 상환우선주(4600억 원) △후순위 지분(6100억 원)으로 자금을 조성했다. 지분 인수에 투입된 6100억 원은 센트로이드PE가 펀드를 결성해 조달했는데 F&F가 가장 비중이 커 약 50%를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새마을금고·신협중앙회·하나금융투자 등 금융기관이 출자했다.
F&F는 센트로이드PE와 다른 출자자들이 현 시점에 테일러메이드 투자로 최대 이익을 거둘 수 있는 방안이라며 펀드 청산이나 지분의 조기 현물 분배 등을 제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F&F는 우선 펀드 청산시 출자자들에 투자 원금 대비 지분 가치를 2배로 인정해 매수하겠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 기간이 예상보다 짧아진 대신 달라질 시장 상황에 따른 위험을 피하고 수익을 확정해 주겠다는 의미"라며 “테일러메이드를 인수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F&F는 펀드 청산이 어렵다면 조기 현물 분배를 진행해 자사의 투자 지분만큼을 별도로 펀드에서 떼어내 취득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F&F가 직접 지분을 보유하게 되면 테일러메이드 경영에 참여, 기존 패션 사업들과 시너지를 강화해 기업가치를 높이면 다른 출자자들도 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면서 펀드 운용사인 센트로이드PE에는 F&F 출자분의 관리 보수와 성과 보수를 보전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F&F는 다른 금융기관 출자자와 마찬가지로 형식상 펀드에 자금을 댄 재무적 투자자지만, 패션 사업을 하고 있고 가장 많은 지분을 확보하면서 센트로이드PE가 향후 테일러메이드를 매각할 때 우선매수권을 갖고 있다. 과거 휠라가 미래에셋PE와 글로벌 골프 브랜드인 타이틀리스트를 보유한 아쿠쉬네트를 공동인수한 후 미래에셋PE의 투자 지분을 인수한 사례는 있지만, 당시는 휠라가 거래의 한 축으로 특정 조건에 지분을 살 수 있는 콜옵션을 보유하고 있었다.
새마을금고 등 다른 출자자들은 F&F가 투자 1년도 안돼 기관투자가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한 계획을 요구한다며 제안을 거절했다. 보통 5년 이상 투자기간을 설정하는 펀드를 1년 만에 청산하는 것은 향후 늘어날 수 있는 수익을 놓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례적인 조치여서 기관내 감사 등 각종 후폭풍이 몰아칠 수 있기 떄문이다.
특히 글로벌 골프 산업의 비약적 성장 속에 그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테일러메이드의 실적이 예상보다 가파르게 오르는데 섣불리 단기에 수익을 실현했다 책임론이 불거질 상황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새마을금고 등은 현 상황에서도 테일러메이드의 지분 가치는 4배 이상 급등했다고 평가하며 F&F가 2배 가량에 지분을 사주겠다는 제안을 물리쳤다. 실제 테일러메이드의 ‘법인세 등 상각전 영업이익(에비타·EBITDA)’은 지난해 약 2억 2000만 달러(약 2600억 원)로 2020년의 1억1300만 달러(약 1344억 원)에 비해 두 배 가량 높아졌다. 올 해 상반기 실적을 기준으로 할때 에비타는 약 3000억원까지 상승할 것으로 회사측은 추산하고 있다.
센트로이드PE가 에비타에 15배의 가치를 적용해 테일러메이드 인수가를 2조원으로 정한 만큼 현 상황에서 보수적으로 평가해도 테일러메이드의 가치는 4조 원을 넘는다. 센트로이드의 펀드가 테일러메이드를 인수하며 생긴 부채와 상환우선주 1조 2800억 원을 제외하더라도 지분 가치는 2조 7000억 원으로 4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출자 기간 전에 펀드를 청산하려면 출자자에게 합당한 이유와 충분한 수익이 보장돼야 한다" 면서 “투자 지분의 가치를 놓고 출자자간 이견이 큰 상황에서 조기에 펀드를 청산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F&F도 무리한 측면이 있지만 이례적 제안을 내놓게 된 것은 막대한 세금 납부 등을 피하면서 자사의 패션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F&F는 펀드 출자자로 참여했기 때문에 테일러메이드를 나중에 인수하면 출자자로서 받는 투자 수익에 따른 세금을 내야하고 인수시에도 각종 세금 및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 만약 펀드가 아닌 직접 지분을 보유하는 형태라면 대출성 자금만 상환하면 돼 최대 수천억 원에 달할 수 있는 세금을 아낄 수 있는 것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F&F가 테일러메이드 인수 초기에 전략적 투자자로 센트로이드PE와 컨소시엄을 이뤘다면 세금 등을 크게 아낄 수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테일러메이드 실적이 이처럼 빠르게 좋아질 지는 알 수 없었다" 면서 “우선매수권이 있지만 현 상황에서 테일러메이드를 인수하려면 엄청난 자금이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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