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반도체와 자동차·배터리·철강·생활가전 등 한국 수출의 버팀목인 제조업에 ‘글로벌 규제 쓰나미’가 휘몰아친다. 미국·유럽연합(EU)·중국·일본 등 경쟁국이 자국 중심의 공급망 확대와 산업 보호를 위해 내년부터 복합 규제를 순차 적용하기 때문이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수출에 큰 타격을 미칠 수 있는 글로벌 규제들이 내년부터 시행되거나 입법예고를 앞두고 있다. 당장 내년 1월부터 미국의 ‘인플레이션법안(IRA)’이 발효되면 국내에서 전기차를 만들어 미국으로 수출하는 현대차·기아의 경우 최대 7500달러(약 1000만 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된다. 배터리 부품과 광물 요건의 가이드라인은 3월에 공개되지만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라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서다.
유럽 전기차 시장도 마찬가지다. EU는 내년 1분기 중 ‘유럽판 IRA’로 불리는 ‘핵심원자재법(CRMA)’의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한다. CRMA는 역내에서 생산된 희토류·리튬 등을 활용한 제품에만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미국 IRA의 여파가 수습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럽에서 추가 규제가 생기면 자동차와 배터리의 수출 경쟁력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EU가 내년 3월부터 강화된 TV 에너지효율기준(EEI)을 적용하면서 가전 업계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강화된 기준이 적용되면 8K TV를 생산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수출 전선에 먹구름이 낄 것으로 예상된다.
공급 과잉으로 가격 하락에 시달리는 반도체도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중국은 자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향후 5년간 1조 위안(약 187조 원) 규모의 육성 계획을 내놓았고 일본은 반도체 공장 설비 투자 비용의 40% 이상을 보조금 형식으로 지급한다. EU가 ‘탄소국경세’ 부과 방침을 구체화하면서 국내 철강 업계도 타격을 받게 됐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내년에는 수출액이 올해(6800억 달러 전망)보다 300억 달러 감소한 6500억 달러로 4.5%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며 “수출 역성장을 막기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주현 산업연구원장은 “과거와 달리 자국 산업 보호가 강화되는 통상 환경에서는 개별 기업 단위로 글로벌 규제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새로운 통상 환경에서는 국가와 기업의 이익이 맞닿은 지점이 많은 만큼 민관이 긴밀하게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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