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말 충청권과 경북 지역을 강타한 폭우가 농산물 가격뿐 아니라 외식물가에 연이어 영향을 주면서 서민 가계의 시름을 더 깊어지게 할 것으로 보인다. 채소류를 많이 사용하는 고깃집이나 한식당에서 채소 값 인상을 이유로 메뉴 가격을 올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년처럼 8월에 대형 태풍까지 발생할 경우 여름 내내 농작물 작황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추석 장바구니 물가가 폭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7일 유통 업계에 따르면 이날 오전 기준 가락시장에서는 시금치(4㎏) 가격이 5만 179원으로 일주일 전 대비 29%가 올랐고 상추(4㎏)는 7만 3469원으로 36% 비싸졌다. 애호박(75%), 깻잎(39%), 복숭아(20%) 등도 줄줄이 가격이 인상됐다. 이는 장마와 폭우로 인한 산지 피해가 큰 탓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10일부터 이날 오전 6시까지 일주일간 농작물 침수 및 낙과 등으로 접수된 농지 피해 면적은 1만 9927㏊로 집계됐다. 축구장(0.174㏊) 2만 8000여 개에 해당하는 규모다. 특히 전북과 충남에 피해가 집중됐는데 벼·콩뿐 아니라 상추·수박 등 시설 재배가 주를 이루는 곳이어서 농산물 가격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됐다.
상추 주산지인 충남 논산에 폭우가 집중되며 이 지역 상추 하우스의 40~50%가 침수됐다. 충남 논산에서 상추 농사를 짓는 한 농민은 “폭우 피해로 하우스 4동이 모두 물에 잠겼다”며 “철거 작업에 수일이 걸리고 생육 기간이 1~2개월인 것을 고려하면 최소 한 달간 출하가 어렵다”고 말했다.
애호박과 고추·오이의 산지 상황도 비슷하다. 주로 강원 지역에서 재배가 이뤄지는데 최근 일조량 부족과 장기간 내린 비로 품질 저하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전체 재배 물량 중 30~40% 수준은 품질 저하로 시장에 내놓을 수도 없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제철 과일 값도 들썩이고 있다. 충남 논산, 전북 고창, 경북 예천 등 수박과 복숭아 같은 여름철 과일 산지가 물에 잠겨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 수박 한 통 가격은 이미 2만 2000원대로 평년(1만 8000원)보다 높고 다음 주부터 30% 이상 가파른 오름세를 보일 것으로 업계는 추정했다.
장마 여파에 이달 들어 복숭아 출하량도 전년 동월 대비 9% 줄었다. 이날 오전까지 접수된 경북 지역의 자두와 복숭아 등 낙과 피해 면적은 47㏊다. 복숭아의 경우 많은 비로 인해 낙과 피해뿐 아니라 농가들의 수확, 방제 작업 모두 사실상 중단됐다. 통상적으로 비가 오면 다음날 방제 작업을 통해 병충해를 예방해야 하지만 며칠째 지속된 폭우로 마비됐다. 또 복숭아가 빗물을 많이 흡수하다 보니 당도가 낮아져 정상과 비율이 급감했다.
이는 당장 9월 추석 물가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사과와 배 생산량은 각각 전년 대비 17%, 21%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사과의 주 산지인 경북 문경, 경북 영주의 산지가 유실됐고 낙과 피해가 큰 상황이기 때문이다. 명절 대목에 주로 판매되는 홍로 사과나 가을 말께 수확되는 부사 사과 등의 산지 피해로 명절 시즌의 사과 가격 인상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에 대형마트는 채소와 과일 물량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앞서 이마트(139480)는 장마에 대비하기 위해 양상추류 스마트팜 재배 물량을 지난해 대비 50% 추가 확대해 운영하고 있다. 또 저장이 가능한 양파·단호박·감자 등은 장마 이전에 물량을 미리 확보해 이마트 자체 물류센터인 후레쉬센터에 사전 매입해 저장하고 있다. 단호박은 전년 대비 2주가량 빠른 6일부터, 감자는 1주일 이른 지난달 15일부터 후레쉬센터에 저장을 시작했다.
롯데마트는 로컬MD 시스템을 활용해 상품 출하 전 선별 시스템을 강화하고 주요 산지별로 농산물을 분산 출하해 리스크를 줄이고 있다. 또 장마철 기간 당도 저하 방지를 위해 CA 저장 기술을 통해 확보한 수박을 다음 주부터 판매할 예정이다. 복숭아 역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경북 청도와 의성, 전북 임실 등 산지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홈플러스도 상추 품목 산지를 경기 지역에서 충청·강원 지역으로 넓히는 한편 장마에 대비해 남원 쪽에서 선제적으로 복숭아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과일과 채소 등의 수급 안정화를 위해 대체 산지 확보에 나서고 있다”며 “농산물의 품질을 유지함과 동시에 유통과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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