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속에 증권 업계가 앞다퉈 뛰어든 메타버스 서비스가 ‘계륵’ 신세로 전락했다.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줄면서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구축한 플랫폼들도 유명무실해진 상황이다. 메타버스 테마형 상장지수펀드(ETF)에서는 1년 만에 수천억 원의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25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표 메타버스 플랫폼인 제페토에 개별 월드를 구성한 6개 증권사(미래에셋·한투·KB·교보·유진·코리아에셋)의 최근 1주일 방문자 수는 한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 6곳 중 3곳은 주간 방문자 수가 전무할 정도여서 사실상 이용자가 없는 셈이다. 대부분 증권사들의 최신 업데이트 시점도 1~2년 전에 멈춰 있다.
자체 메타버스 플랫폼을 구축한 NH투자증권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업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야심 차게 서비스를 출시하며 메타버스 공간 내 다양한 주제의 세미나와 인공지능(AI) 투자 상담 등을 계획했지만 현재 플랫폼 내 채널 이용자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증권사들 사이에 메타버스 열풍은 2020년 말부터 불기 시작했다. 현실과 가상세계를 잇는 초월적 공간인 메타버스가 주요 테마로 급부상하고 이 공간에서 화폐 기능을 하는 대체불가토큰(NFT)과 이를 작동하게 해주는 블록체인 기술까지 ‘웹 3.0’이라는 범주로 묶이면서 시장의 관심과 함께 자금을 빨아들였다.
증권사들은 새로운 투자 생태계를 기대하며 너도나도 메타버스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고 가상공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사그라들면서 자연스럽게 메타버스 서비스에 대한 이용률도 하락했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메타버스가 한창 이슈일 때는 시류를 놓치면 안 된다는 분위기에 일단 뛰어들었지만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관심이 줄었다”며 “기존 서비스를 유지하는 것 외에는 새롭게 관련 사업에 인력과 비용을 투입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메타버스 서비스를 담당한 디지털 부서 인력들 대다수는 증권사들의 새 먹거리로 떠오른 토큰증권공개(STO) 업무로 이동한 상태다.
메타버스에 시들한 관심은 투자 측면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삼성과 미래에셋·KB 등 국내 주요 자산운용사들은 2021년 말부터 2022년 상반기 사이에만 11개의 메타버스 관련 ETF를 출시하며 시장 흐름에 동참했다. 하지만 이후 순자산은 계속 감소세다. KG제로인에 따르면 22일 종가 기준 11개 ETF의 순자산 총액은 6977억 원으로 1년 전(1조 109억 원) 대비 3100억 원가량 줄었다. 최대 순자산을 기록했던 2021년 말(1조 5202억 원)과 비교하면 반 토막이 난 상태다.
TIGER Fn 메타버스 ETF의 순자산은 1년 전 2642억 원에서 22일 1408억 원으로 급감했으며 KODEX 미국 메타버스 나스닥 액티브 ETF도 같은 기간 1122억 원에서 718억 원으로 줄었다. 11개 ETF는 연초 이후 평균 13.1% 상승하며 양호한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투자금 자체는 계속 빠져나가는 모습이다.
다만 투자 전문가들은 메타버스 산업에 대해서는 낙관적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안현국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2년 전 가장 유행에 민감했던 회사들이 메타버스 사업에 앞장서 뛰어들었는데 시장에 넘쳐나던 거품은 일정 부분 없어진 상태”라며 “투자 측면에서도 글로벌 메타버스 관련주들의 이익 모멘텀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추가 상승을 기대할 만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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