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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뷔페·상품권이 더 좋아"…저녁 술자리 선호는 19% 뿐

[달라진 송년회 트렌드]

'음주가무' 회식은 옛말

개인 일정 존중 문화 자리잡으며

직장인 44%만 회사 송년회 진행

불경기 속 외식물가 상승도 한몫

2030세대 만족도는 높아졌지만

예약 급감에 소상공인은 위기감





대기업 직장인 강 모(36) 씨는 연말에 휴가를 떠나기로 했다. 직원들이 연차를 쓰고 자리를 비운 탓에 그가 다니는 사무실 곳곳은 벌써 비어 있는 상태다. 강 씨는 “개인 일정이 존중되는 문화가 자리 잡자 오프라인 저녁 회식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면서 “회사 공식 행사를 연다는 말이 없어 자유롭게 친지들과 시간을 보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음주가무’로 대표됐던 연말 송년회가 달라졌다. 횟수도 줄고 가족이나 친지와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풍경이 더는 어색하지 않게 됐다. 올해 들어 외식 물가가 크게 오른 데다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연말 저녁 자리를 기피하는 문화가 퍼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새롭게 자리매김한 ‘조용한’ 음주 문화가 엔데믹 전환 후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라진 대형 행사의 자리는 점차 소규모 모임이나 문화 행사가 채우고 있다.

22일 잡코리아에 따르면 올해 회사 송년회를 진행한다고 응답한 직장인은 전체의 44.1%에 불과했다. 횟수가 지난해 대비 적어졌다고 답한 사람은 53.5%를 차지해 비슷하거나(35.8%) 많다(10.7%)는 응답을 크게 앞질렀다. 직장인이 선호하는 송년회 유형은 점심 모임이 29.5%로 가장 많았다. 이어서 상품권 증정이 19.2%로 집계됐다. 음주를 동반한 저녁은 18.7%로 적었다.

실제 기업별 송년회는 사라지거나 축소됐다. 대기업들은 ‘종무식’으로 불렸던 공식적인 연말 행사를 대부분 없앴다. 경기가 위축된 상황에서 비용 부담이 커져서다. 가족과 편안한 연말을 보내는 편이 좋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점도 한몫했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열렸던 직원 시상식은 점심시간 팀별로 만든 상장을 장난스레 나누며 즐기는 소소한 자리로 대체됐다. 직장인 이 모(35) 씨는 “연말 인사 겸 팀 단위로 점심 때 짧게 식사한 뒤 웃고 끝냈다”며 “술은 마시더라도 샴페인과 맥주 정도가 전부”라고 전했다.

폭음을 꺼리는 젊은 직원들의 성향에 따라 상품권을 지급하거나 단체 공연 관람을 선택하는 경우도 생겼다. 광화문 인근의 한 병원 의료진은 최근 송년회를 겸해 뮤지컬 ‘맥베스’가 열리는 세종문화회관을 찾았다. 엔데믹 이후 공연 시장 회복세에 맞춰 연말 행사를 문화 관람으로 대신하려는 수요도 증가한 셈이다. 세종문화회관 관계자는 “각종 기업·단체 등이 공연 티켓을 구입하는 사례가 예년에 비해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회식 트렌드 변화에는 팬데믹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때 대규모 및 오후 10시 이후 모임이 금지된 후 형성된 음주 문화가 엔데믹 전환 후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급등한 외식 물가 상승도 한 요인으로 풀이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외식 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4.8% 올랐다. 지난해에도 직전 연도보다 8.4% 상승한 데 이어 재차 오름세다.

이 같은 현상에 외식 프랜차이즈 업계의 희비가 엇갈렸다. 2030세대가 선호하는 와인과 페어링 존을 갖춘 뷔페식 레스토랑에는 송년회나 모임 예약이 쏠렸다. 크리스마스 연휴와 주말·주중의 황금 시간대는 일찍부터 ‘풀 부킹’ 상태다. 반면 패밀리레스토랑은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됐다. 소비 위축으로 가볍게 식사를 끝내는 사람이 늘면서다. CJ푸드빌 관계자는 “엔데믹 직후였던 지난해 말과 달리 올해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소상공인이 체감하는 변화는 더 컸다. 연말이 더는 ‘대목’이 아니라는 인식에 자영업자들은 위기감까지 느끼고 있다. 공단이 위치한 경기 안산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정 모 씨는 “2019년도 대비 올해 말 직장인들의 송년 모임은 20% 남짓한 수준”이라며 “팬데믹 이후 오랜만에 송년회를 하다보니 오히려 부서별로 점심에 모임을 갖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예전에는 12월이면 예약이 다 차 있었는데 요새는 아니다. 가끔 오는 회식 손님들도 저녁 9시 반 이전에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사무실이 밀집한 지역의 상황도 비슷했다. 크리스마스나 신정 연휴에 교외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예년보다 상권이 움츠러든 모습이다.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일대에서 호프집 4곳을 운영하는 이 모 씨는 “2019년도와 달리 송년 모임 예약 문의가 거의 없다”며 “코로나19로 인해 회식 문화가 많이 사라져 모임이 감소한 걸 체감한다”고 한탄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트렌드 변화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얼어붙은 경기와 외식 물가 상승이 회사를 비롯한 행사 주체 측 입장에서 비용 부담으로 작용하는 모양새”라며 “과거에 비해 가까운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시간을 보내며 내실 있는 모임을 보내려는 패턴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도 “기업별 행사 예산이 줄면서 저녁에 3차까지 이어지는 자리가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2030세대의 문화에 맞게 한 시간을 넘지 않는 간단한 점심 모임으로 대체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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