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9일 더불어민주당이 ‘감액 예산안’을 강행 처리한 것과 관련해 “깊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야당이 예비비를 대폭 삭감해 재해·재난 등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 즉시 대응할 여력이 떨어지는데다 취약계층 지원 대책도 지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보편관세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에 신속하게 대응할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별도의 입장문을 통해 “그동안 정부와 여당은 민생을 최우선으로 두고 예산안의 법정기한 내 합의처리를 위해 국회의 예산안 심사에 충실히 임해왔다”면서 “하지만 야당이 책임감 없이 민생을 저버리는 무리한 감액 예산안을 제시하고 일방적으로 처리했다”고 밝혔다.
최 경제부총리는 야당의 단독 감액 예산안이 시행될 경우 발생할 중대한 문제점들을 거론하며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는 “단독 감액 예산안은 국가의 기본적 기능을 마비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야당 단독으로 예결위를 통과한 예산안은 677조 4000억 원 규모의 정부 원안에서 4조 1000억 원이 삭감됐다. 4조 8000억 원 정부 예비비가 2조 4000억 원 감액됐다. 예비비는 예측할 수 없는 예산 외의 지출 등을 충당하기 위해 일정 한도에서 미리 책정하는 금액이다.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의 특수활동비와 검찰 특정업무경비와 특활비, 감사원 특경비·특활비, 경찰 특활비 등도 전액 삭감됐다. 최 부총리는 “예비비의 대폭 삭감으로 재해·재난 등 예측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즉시 대처하지 못하게 된다”며 “특활비와 특경비의 전액 삭감으로 검찰과 경찰이 마약과 딥페이크·사기 등 신종 민생 침해 범죄를 수사하는 것과 감사원이 위법·부당한 행위를 감사하는 것이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반도체·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의 글로벌 주도권 확보를 위한 정부의 지원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야당 단독의 감액 예산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감액 예산을 재원으로 반도체·AI 등의 경쟁력 강화에 예산을 투입하는 길이 막혀버리기 때문이다. 정부가 최근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내놓은 용인·평택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망 지중화 사업이나 AI 컴퓨팅 구축 사업에 추가로 재정을 투입하려던 계획이 틀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 관계자는 “첨단산업의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국회와 협의해 기존 정부 원안에 없던 예산 사업들을 보강할 계획이었다”며 “야당의 감액 재원을 반도체·AI의 글로벌 주도권 확보를 위한 지원에 쓰는 방안을 논의하던 중에 야당의 감액 예산안이 단독으로 처리돼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도 “불확실성 파도에 신속히 대응할 골든타임도 놓치게 된다”며 “미국 신정부 출범 이후 예상되는 보편관세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적시 대응하기 곤란해지고, 반도체·AI 경쟁력 강화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소상공인·취약계층 지원 보강 등 양극화를 타개할 대책 마련이 늦어지는 점도 우려 요인이다. 최 부총리는 “취약계층에 대한 맞춤형 지원을 추가하거나 여전히 어려움이 계속되는지역경제에 활력을 부여하는 것이 어려워진다”며 “야당의 일방적인 감액 예산안 의결에 따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귀결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야당은 이제라도 단독 감액안 처리를 멈추고 예산안 합의처리에 임해줄 것을 촉구한다”며 “정부도 (합의처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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