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 증시는 글로벌 주요 증시 수익률에서 사실상 꼴찌를 기록할 만큼 최악의 상황이다. 올 들어 코스피 수익률은 -8.09%(24일 기준), 코스닥은 -21.52%를 기록했다. 인공지능(AI) 시장 개화와 맞물려 역대급 랠리를 구가한 미국 나스닥(33.44%)는 물론 대만 자취엔(28.94%), 일본 닛케이(16.65%) 등과 견주기 민망할 정도다.
문제는 한국 경제의 제반 여건이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반등 자체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탄핵 정국 속에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450원까지 치솟으면서 가뜩이나 수급 불안을 키웠던 외국인의 매도세가 좀체 진정되지 않고 있다. 국내 기업의 실적도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의 내년 1월 출범을 앞두고 하향 조정 추세가 뚜렷하다. 실제 최근 3곳 이상의 증권사가 실적 전망치를 낮춘 상장사는 10곳 중 6곳(에프앤가이드(064850) 기준) 남짓 꼴로 집계됐다.
계속되는 고점 논란에 피로감이 쌓인 미국 증시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 조절 예고에 급락한 후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며 ‘반쪽짜리’ 산타 랠리를 즐겼지만 한국은 기업 실적 둔화와 고환율 현상이 지속돼 이마저도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내년 1월 트럼프 취임을 시작으로 시장 변동성을 확대할 다양한 이슈들이 예정돼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기준금리 인하 효과가 실질적으로 나타나고 본격적인 경기 부양이 시작된다면 증시가 반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실적도 수급도 '흔들'…주요 글로벌 증시 ‘꼴찌’
26일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최근 1개월 새 나온 증권사 전망을 종합한 올 4분기 코스피 영업이익 추정치는 56조 8199억 원으로 한 달 만에 1.50% 감소했다. 특히 국내 증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005930) 영업이익 전망치(9조 2193억 원)가 5%가량 줄어든 게 직격탄이 됐다. 이 외에도 SK하이닉스(000660)(-1.30%),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1.27%), 셀트리온(068270)(-1.45%)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의 영업이익 추정치가 일제히 하락하면서 주요 기업들의 실적 둔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실적 우려는 국내 증시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24일까지 코스피지수는 214.76포인트(8.09%) 내렸다. 같은 기간 코스닥은 무려 21.52% 급락해 블룸버그통신이 집계하는 아시아태평양 주가지수 87개 가운데 꼴찌에 올랐다. 특히 코스피와 코스닥은 올해 7월부터 11월까지 5개월 연속 하락했다. 만약 두 지수가 이달에도 하락한 채 마감한다면 2008년 금융위기 당시 6월부터 11월까지 6개월간 하락한 것과 동률이 된다. 이미 코스피는 이달에도 0.63%(24일 기준) 하락해 그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내 증시가 반등할 수 있는 재료도 거의 안 보이고 있어 시장 침체가 장기화할 우려마저 커지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계엄 사태로 촉발된 탄핵 정국이 내수 소비를 짓누르고 있다. 실제로 12월 소비자심리지수는 전월 대비 12.3포인트 급락하면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이런 추세라면 내년 경제성장률이 1%대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내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관세 부과, 전기차 의무화 폐지 등 11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하겠다고 밝히면서 대외적인 불확실성도 증폭되고 있다.
환율 급등에 따른 환차손 우려로 외국인의 국내 증시 이탈 역시 이어지고 있다. 올 하반기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만 총 20조 8691억 원(24일 기준)을 순매도했다. 특히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뒤처지며 AI 랠리에서 벗어난 삼성전자를 18조 2989억 원어치나 팔아치운 점이 뼈아프다. 개인마저 미국 증시, 가상자산 등 국내 증시보다 수익률이 높은 시장으로 떠나면서 수급 기반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불안한 美 산타랠리…초조해진 韓 증시
이런 상황에서 미국 증시에 찾아온 산타 랠리가 내년 초까지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경계심 또한 불안감을 키우는 요소다. 연준이 매파적 분위기로 돌아선 만큼 증시를 밀어올릴 동력이 약해졌다는 판단에서다.
24일(현지 시간)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0.91% 오른 4만 3297.03에 마감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10% 상승한 6040.04에, 나스닥종합지수는 1.35% 급등한 2만 31.13에 장을 마쳤다. 시장에서는 최근 숨고르기 양상을 보이던 증시가 이날 일제히 뛰자 ‘산타 랠리’가 펼쳐질지 주목하는 분위기다.
다만 투자자의 기대와 달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적지 않다. 연준이 금리 인하 속도 조절에 나서겠다고 밝힌 데다 미국 주식이 고평가됐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다. 지금 추세라면 미 증시는 2년 연속 20% 이상 상승(S&P500 기준) 달성이 유력하다. 전 세계 증시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성과로 평가되지만 그만큼 상승에 대한 피로감이 쌓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다 한 달도 남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 이후 불확실해질 국제 정세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현재 채권 시장에서는 트럼프 정책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며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4.6%를 오르내리고 있다. 채권금리 상승은 증시에 부정적이다.
인프라스트럭처캐피털어드바이저스의 제이 햇필드 분석가는 “연말 랠리는 (있다고 해도) 그렇게 강력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시장에 대해 중립적”이라고 말했다.
내년 증시 ‘상저하고’ 전망…“보수적 접근 필요”
시장에서는 한국 증시에서 산타 랠리에 이은 연초 랠리를 기대하기조차 힘들다며 내년 한국 증시가 ‘상저하고’의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올 11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한 만큼 실질적인 효과는 내년 1분기 중반에나 나타날 것이라는 설명이다. 내수 회복 기대감은 내년 하반기 정부의 재정지출이 확대돼야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병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단기적으로 대외 불확실성으로 성장주가 주식시장을 주도하기 어렵다”며 “정책 모멘텀, 배당 등 틈새 분야 공략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웅찬 iM증권 연구원은 “내년 상반기는 미 정책 불확실성 리스크, 미 증시 피크 아웃(정점 후 하락) 가능성, 금리 동결 리스크가 부각돼 기댈 언덕이 잘 보이지 않는다”며 보수적 접근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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