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한국 증시가 크게 출렁인 것은 연말 수급 공백이 발생한 상태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 추진에 따른 정치적 불확실성이 투자자 심리를 크게 위축시켰기 때문이다. 12월 결산 법인인 한일시멘트(-10.22%), 키움증권(-9.0%), 삼성증권(-8.13%) 등 일부 종목에서 배당락이 발생한 영향까지 겹쳤다.
문제는 단순히 증시만 하락한 것이 아니라 원화 가치도 급락하면서 외국인투자가들의 본격적인 이탈 조짐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정치 리스크가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는 범위를 넘어 원화 가치까지 흔들며 외국인 매도로 이어지면 최악의 경우 원화의 추가 약세, 투자자 이탈 등 연쇄 악순환으로 연결될 수 있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연말이라 거래도 많지 않은데 환율 급등으로 외국인이 급격히 이탈했다”며 “예측할 수 있는 범위를 넘은 만큼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짚었다.
비상계엄 사태 직후보다 심상치 않다는 진단도 나온다. 비상계엄 선포 자체는 급작스러웠으나 즉각 해제됐고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까지 빠르게 진행됐다. 그러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은 정책 공백 우려가 큰 데다 여야 대립으로 언제까지 진행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불확실성이 더 크다는 의미다. 실제 이달 4~6일 1조 86억 원을 순매도한 외국인은 9~13일 3344억 원으로 순매도 규모를 줄였다가 여야 갈등 조짐이 본격화한 16일 이후 2조 원 넘게 순매도하고 있다.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가 팬데믹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하는 등 내수 침체 조짐도 증시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될 때만 해도 정치적 리스크가 빠르게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로 증시가 소폭 올랐는데 최근에는 정치 상황이 더 악화돼 불확실성이 확대됐다”며 “비상계엄 사태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기조 변화, 철강 등 중국의 저가 수출, 연말 내수 부진 등 각종 악재가 발생한 영향도 있다”고 분석했다.
외국인투자가 입장에서는 기업 실적도 하향 추세인데 정치마저 불안한 한국에 계속 투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가 길어지면 대외신인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투자 업계에서는 외국인들이 선진국 경계에 있던 한국을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점차 신흥국으로 분류하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최성락 국제금융센터 자본유출입분석부장은 “비상사태 이후로는 경기나 기업 실적, 미국 금리 등 글로벌 여건에 따라 가격이 움직였다”며 “정치적 불안 사태가 길어지면 결국 실물경제가 영향을 받으면서 투자자 신뢰도 나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 불안의 근본적인 원인이 정치 불안인 만큼 이를 해소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증권시장안정화펀드는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돼 있으나 실제로 활용될 가능성은 낮다. 여야 갈등이 계속되는 한 시장 안정 효과가 크지 않을 뿐 아니라 가격 왜곡 등 부작용만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발목을 잡는 만큼 결국 기댈 것은 기업이다. 내년 실적 반등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싸늘한 투자심리를 되돌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제조업 경기 반등 가능성, 중국의 경기 부양 정책 등이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가 기업가치 제고 공시에 참여하기로 하는 등 국내 기업의 밸류업 정책 참여 여부도 살펴볼 포인트다. 신승진 삼성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순매도 대부분이 삼성전자에 집중됐는데 내년 영업이익 추정치가 40조 원대로 줄어든 영향으로 보인다”며 “내년 1월 8일 삼성전자 실적 발표 이후 불확실성이 줄면 증시나 환율도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외환보유액이나 수출 등을 감안하면 현재 환율 수준은 기초체력(펀더멘털) 대비 과도한 측면이 있다”며 “환율이 오른 만큼 수출 기업 실적에도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SK하이닉스·현대차 등에 깜짝 실적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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