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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재정 견제·감시 사각지대…출연금도 성역화

작년 지자체 재정자립도 43% 그쳐

현금살포·조형물에 수십억 투입

지역축제도 5년만에 32% 급증

지방의회 전문성 부족 견제 못해

외유성 출장으로 예산유용 논란도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지방자치단체들의 포퓰리즘(인기 영합주의) 재정이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지자체들은 재정의 상당 부분을 정부가 나눠주는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 의존하면서도 지방재정법을 통해 중앙정부의 감시를 피할 수 있어 현금성 민생안정지원금이나 지역 축제 등에 재정을 낭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지방재정통합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전국 지자체(광역·기초)의 재정자립도는 2024년 기준 43.31%를 기록했다. 재정자립도는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지방세 및 세외수입의 비율을 뜻한다. 가계에 비유하면 월 43만 3000원을 벌어들이는 가정이 매달 100만 원을 고정적으로 지출하고 있는 셈이다.

전국 243개 지자체 가운데 재정자립도가 10% 미만인 곳이 44곳(18%)에 달했다. 전북 진안군(6.69%)이 전국에서 가장 낮았으며 경북 영양군, 전남 고흥군, 강원 화천군 등 44곳이 10% 미만에 머물렀다. 재정자립도가 10%가 안 되는 지역 대부분은 고령 인구가 많고 인구가 급속히 소멸하고 있는 전북·전남·강원·경북에 집중돼 있었다. 반면 재정자립도가 50%를 넘긴 곳은 서울·세종·성남 등 단 7곳(2.9%)에 불과했다.

문제는 자립도가 떨어지는 지역에서 선심성 예산 지출이 더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재정자립도가 전국에서 가장 낮은 전북 진안군은 군민 1인당 20만 원의 민생안정지원금을 지급했으며, 같은 방식으로 모든 주민에게 지원금을 지급한 지자체만 광명·파주·음성·완주·나주·영광·김제 등 15곳에 달했다. 비상계엄 등의 여파로 침체에 빠진 지역 경기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1인당 적게는 20만 원, 많게는 50만 원까지 지급한 것이다. 전북 순창군은 이달 21일까지 대학 신입생에게 1인당 200만 원 상당의 진학축하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또한 지자체들은 지역민의 호응을 얻기 위해 관광객 유치를 명목으로 일시적인 행사나 조형물 설치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대구시 중구는 2017년 국비 35억 원을 포함해 총 70억 원을 들여 순종 황제 동상을 설치했으나 역사 왜곡 논란과 교통 혼잡 문제로 7년 만에 철거했다. 이 과정에서 철거 및 도로 원상 복구 비용만 11억 원이 추가로 투입됐다.



지역 축제 역시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19년 884개였던 지역 축제는 2024년 1170개로 늘어나며 5년 만에 32% 급증했다. 하지만 정작 지역 축제에 참여하는 주민과 외부 관광객은 줄어들고 있다. 지역 주민 참가율은 2019년 45%에서 2023년 35.4%로 줄어들었고, 평균 외부 방문객 비율은 1.58%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거기에다 축제당 5억 원 이상 투입되는 사례도 전국적으로 284개에 달한다.

지방재정을 감시해야 할 지방의회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권익위에 따르면 전국 243개 지방의회는 2022년부터 2024년 5월까지 915건의 해외 출장을 다녀왔으며 여기에 투입된 예산만 355억 원에 달한다. 지방의원들이 연평균 100억 원 이상을 출장비로 지출하고 있는 셈이다. 지방의원이 항공권 가격을 부풀려 예산을 유용한 사례도 전체 출장의 절반에 가깝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방의원의 해외 출장을 엄격히 규제할 법적 근거가 현재로서는 미비하다. 행정안전부 역시 아직까지 지방의회 의원들의 국외 출장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나 규제 기준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국외 출장 심사 절차를 강화하는 조례 개정을 추진 중이지만 대다수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방의회의 예산심의에 대한 전문성 강화와 함께 시민단체의 적극적인 감시가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앙에서는 국회가 예산심의를 하고 있지만 지방의회에서는 졸속으로 예산심의를 해서 재정이 방만하게 사용되는 것 것 같다”고 말했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역시 “위원회 구성에 있어서 재정 전문가들이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오래 있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지방의회가 예산이나 재정 전문성을 키워야 하고 시민단체의 적극적인 감시 활동 참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출연금 뒤에 숨은 혈세 도둑

한국국제협력단이 기획한 ‘피코 평화의 숲’ 팝업스토어. 사진제공=KOICA


한편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와 민간 등에 지급하는 출연금 제도를 수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0일 기획재정부와 외교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가 공익 사업을 위해 공공기관과 지자체·민간사업자 등에 지원한 출연금은 지난해 말 기준 53조 3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2018년 33조 4000억 원에 불과했던 출연금은 최근 6년 사이 59.6% 급증하며 같은 기간 정부 예산 증감률(53.1%)을 웃돌았다.

실제 외교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올해 정부로부터 650억 원의 출연금을 지원받았다. 2017년만 해도 KOICA에 대한 출연금 지원 규모는 329억 원에 불과했으나 불과 8년 만에 지원 규모가 2배 넘게 불어난 것이다. 문제는 이 출연금이 정부 보조금과 달리 정부의 감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출연금은 사후 정산 등 법적 의무 규정이 없어 자금 횡령이 일어나도 처벌하지 못하는 등 대표적 재정 누수의 사례로 꼽힌다.

문제는 출연금 예산이 국가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것과 달리 사후적인 관리·감독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점이다. 정부는 국가가 해야 할 사업이지만 여건상 직접 수행하기 어렵거나 민간 대행이 효과적이라고 판단될 경우 국가재정법에 근거해 재정을 출연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보조금·출자금 등과 성격이 같지만 △용도 외 사용 금지 △법령 위반 시 교부 취소 △벌칙 △사후 정산 등 사후 관리 체계가 법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

특히 출연기관에 민간단체 지원 예산이 편성될 경우 보조금과 같은 명시된 제재 규정이 없어 출연금을 횡령해도 수사기관이 처벌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최근 보조금 부정 수급에 대한 관리가 촘촘해지자 정부출연기관이나 단체들이 보조금 대신 출연금 지원을 선호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장희란 국회 예산정책처 분석관은 “출연금 사업에서 감시의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며 “출연금 뒤에 숨어 있는 혈세 도둑을 잡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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