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선포한 철강·알루미늄 25% 관세 조치가 12일 결국 발효되자 관세 부과 유예나 면제를 바랐던 국내 철강 업계가 생존 전략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부도 미국과 고위급 협의를 진행하고 업종별 경쟁력 강화 전략을 마련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와 현대제철(004020)은 각각 통상 전략을 담당하는 부서를 중심으로 대(對)미국 수출 전략을 촘촘히 짜고 있다. 이들은 관세 피해 최소화에 만전을 기하는 동시에 수출 쿼터제 폐지로 대미 수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제품군 선별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포고문에 따라 미국이 수입하는 모든 철강·알루미늄과 파생 제품에 미국 동부 시각 기준 12일 오전 0시 1분(한국 시각 12일 오후 1시 1분)부터 25% 관세 부과가 시작됐다.
철강 업계는 일단 25% 관세로 미국산 제품 대비 국산 철강 제품의 가격 경쟁력 약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미국의 철강 생산 인프라가 취약해 고품질 제품을 만들 능력이 부족하다지만 저품질 열연강판 등을 자체 생산해 한국산 제품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미국 US스틸에 지분을 투자해 공조 체계를 유지하기로 하면서 철강산업 최대 경쟁국인 일본에 미국 시장점유율을 일부 내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만 이번 철강 관세가 예외 없이 모든 국가의 모든 철강 제품에 일괄 부과되는 만큼 쿼터제 적용으로 수출 물량과 품목에 제한을 받아온 국내 철강 업체들 중에서는 오히려 수출 확대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이번 관세 부과 조치로 한국은 2018년 미국과 협상을 통해 철강에 적용받던 기존 면세 쿼터(연간 263만 톤)가 폐기됐다.
미국이 생산하지 못하는 자동차용 강판 등 일부 품목을 중심으로 한국 제품이 캐나다와 멕시코산 제품을 대체해 수출 물량을 끌어올릴 여지가 생긴 것이다. 캐나다(71억 4000만 달러)와 멕시코(35억 달러)는 대미 철강 수출 1·2위 국가다. 한국은 지난해 29억 달러를 수출해 4위를 기록했다.
철강 업계 고위 관계자는 “미국이 자체 생산을 늘린다고 하더라도 철광석 운송비·인건비 등 미국산 가격이 한국산보다 30%가량 높아 25% 관세에도 경쟁을 해볼 만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적극 대응이 가능한 대기업과 달리 중소 철강·알루미늄 생산업체들은 정부의 재정 지원을 적극 촉구했다. 유경연 지제이알미늄 대표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한 ‘미국 정부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에 따른 수출 중소기업 현장 간담회’에서 “미국 쪽 에어컨과 변압기 등에 들어가는 알루미늄 500만 달러 공급계약을 진행하다 관세 문제로 거래가 중단됐다”며 “경영 애로 사항이 생길 때 필요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정책자금을 확대해달라”고 호소했다.
중기부와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 수출업체들에 대해 관세 부과에 따른 피해 파악과 지원 체계 구축에 나설 방침이다. 오영주 중기부 장관은 “품목별 협회·단체 등과 함께 관세 피해가 우려되거나 피해를 본 수출 중소기업의 경영 정상화, 수출국 다변화 등을 적극 돕겠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25% 관세 부과 조치 강행과 관련해 한미 고위급 협의를 진행하고 자동차·철강 등 업종별 경쟁력 강화 전략을 마련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미국 측과 통상교섭본부장 등 고위급 및 실무 협의를 밀도 있게 진행하는 한편 여타 주요국의 대응 동향을 모니터링해 우리 산업계의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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