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정책 불확실성과 경영 여건 악화로 지난해 국내 전체 상장사의 단기차입금이 52조 원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위기 때인 2022년 이후 최대 증가 폭이다. 현 추세라면 연말 전에 2449개사 단기차입금 규모는 400조 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전망돼 자금 조달 여건 개선과 부채 관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금융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상장사 2449개사의 재무제표상 단기차입금은 369조 4315억 원으로 2023년 말(317조 4381억 원) 대비 51조 9934억 원(14.1%)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삼성전자(005930)(6조 579억 원), 삼성SDI(006400)(3조 960억 원), 대한항공(003490)(1조 4956억 원), 두산(000150)(1조 3636억 원) 등 주요 대기업을 중심으로 단기차입금이 큰 폭 늘었다.
경기 침체 장기화에 실적 악화 등으로 현금 자산이 줄어들자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고 만기가 짧은 ‘급전’ 성격의 단기차입금을 늘린 것이다. 투자보다는 운영 자금 조달 목적이 많다 보니 경영 여건이 악화됐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실제로 과거 경제위기 때마다 상장사 단기차입금이 급증했다. 2007년 말 126조 3614억 원이던 상장사 단기차입금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205조 8682억 원으로 79조 5068억 원(62.9%)이나 증가했다. 코로나19 위기인 2022년에도 42조 8341억 원(17.8%) 늘어난 바 있다.
올해 들어서도 미국 관세 등 대외 불확실성과 경기 침체가 지속돼 단기차입금은 크게 불어나는 흐름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 2일부터 4월 17일까지 단기차입금 증가 공시를 낸 상장사 47개사의 조달 규모는 3조 7649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조 5819억 원) 대비 45.8% 증가했다. 대부분 운영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급전을 쓴 것이다. 자기자본 10% 이상 단기차입금이 증가한 경우만 공시 대상인 만큼 전체 상장사로 확대하면 연내 400조 원을 넘어서는 게 확실시된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단기차입금이 늘어나게 된 것은 좋은 신호로 볼 수 없다”며 “유동성 위기에 빠지는 등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다 보니까 단기차입에 의존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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