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반도체와 전기자동차처럼 해외 경쟁국 대비 세제·재정 지원이 부족해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법안과 제도를 대폭 손질한다. 미국과 유럽연합(EU)·대만·중국 등 주요 국가들이 자국 중심의 공급망 확대와 산업 보호 차원에서 규제를 켜켜이 쌓아왔지만 우리 정부는 미온적 대응으로 일관해 국내 기업들에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30일 “기획재정부는 관계 부처와 협의해 반도체 등 국가 전략산업에 대한 세제 지원을 추가로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달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반도체특별위원회에서 제안한 세제지원안이 충분히 논의되지 못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이같이 지시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국가 첨단산업 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을 대폭 상향할 수 있도록 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정부가 다시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국내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우대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직영 서비스센터·전산시스템 운영 여부 등을 따지는 기준을 새로 만들고 이에 따라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는 것이 골자다. 서비스센터가 없는 수입 전기차는 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반도체와 전기차의 세제 및 재정 지원을 손질하기로 한 것은 그만큼 두 산업이 글로벌 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경쟁국의 규제에 맞대응하지 않으면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이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반도체 설비투자 기업에 세액을 25% 감면해주고 대만도 현지 연구개발(R&D) 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을 25%로 높이는 법안을 발의했다.
전기차 산업도 미국·EU을 중심으로 자국우선주의가 강화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내년 1월 1일부터 북미 지역에서 생산되지 않은 전기차(상업용 리스차 제외)는 보조금을 받지 못한다. EU는 자국 내에서 생산한 리튬·희토류 등 원자재를 사용하는 제품에만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핵심원자재법(CRMA)’ 시행을 앞두고 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우리 정부도 뒤늦은 감은 있지만 국내 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지원책을 강구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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