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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폐 후보만 200곳…좀비기업 빠르게 솎아내 밸류업 지원사격

[증시 퇴출 제도 대수술]

■ 상장폐지 시총·매출액 상향

실질 심사기간 4→2년으로 단축

시총 500억·매출 300억까지 확대

코스피 62곳·코스닥 137곳 사정권

법개정 필요없어 하반기부터 시행

"상장사 대응시간 부족" 목소리도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KRX 콘퍼런스홀에서 열린 IPO·상장폐지 제도개선 공동세미나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10월 상장폐지 요건을 완화했던 금융 당국이 불과 2년여 만에 정책 기조를 180도 바꾼 것은 좀비기업을 적시 퇴출하지 않고서는 밸류업 정책을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국내 상장기업 시가총액은 2288조 원으로 미국(9경 968조 원) 대비 40분의 1 수준에 불과하지만 상장기업 수는 2478개사로 미국(4044개사)의 60% 수준에 달한다. 한국보다 시가총액이 1000조 원 이상 많은 대만(3492조 원)보다도 상장사가 732개나 많다.

이처럼 최근 상장사 수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기업·투자자 보호만 강조하면서 부실기업 상장폐지에 소극적으로 대처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중론이다. 실제 시가총액과 매출액 요건은 각각 2009년, 2003년 도입 이후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고 최근 10년간 두 요건으로 상장폐지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감사 의견 미달도 상장폐지 대상이나 2차·3차에 걸쳐 개선 기회를 부여하면서 실효성이 크게 떨어졌다. 상장폐지 요건 자체가 낡았을 뿐 아니라 당국도 느슨하게 운영한 셈이다. 그 결과 지난해 말 거래정지 기업 수는 코스피·코스닥 합산 83곳으로 자본 배분 비효율성, 시장 전반의 신뢰도 저하, 주가 상승 제한 등 각종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결국 당국은 상장사를 적절하게 퇴출하기 위해 시가총액 요건을 3년간 3단계에 걸쳐 최대 500억 원(코스닥 300억 원)까지 확대하고 매출액 요건도 300억 원(코스닥 100억 원)까지 인상하기로 했다. 다만 성장 잠재력이 높은데 매출액이 낮은 기업 특성을 고려해 시가총액이 1000억 원(코스닥 600억 원) 이상이면 매출액 미달 상장폐지 조건은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금액 기준은 미국 등 주요국 수준을 참고했다. 최종 상향 조정이 마무리되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코스피 788개사 중 62개사(7.9%), 코스닥 1530개사 중 137개사(8.9%)가 요건에 미달된다. 앞으로 3~4년 동안 기업가치 제고(밸류업)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시장 여건이 악화되면 퇴출 대상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일단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하면 시장에서 최대한 빠르게 퇴출시킨다는 계획이다. 최근 5년 동안 상장폐지된 사례 71건 중 62건은 사유 발생부터 최종 퇴출까지 1년 이상이 걸렸다. 앞으로는 이의 신청 시 코스닥 개선 기간은 현행 1년을 유지하되 코스피는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한다. 실질 심사는 코스피에서 최대 4년(2+2)에서 최대 2년(1+1), 코스닥에서는 최대 2년에서 최대 1.5년으로 축소한다. 코스닥 실질 심사의 경우에는 2심과 3심을 합쳐 2심제로 운영한다. 1심 결과가 명확하면 추가 개선 기간을 부여하지 않는다.

형식·실질 사유가 중복 발생하면 병행 진행하다가 하나라도 먼저 상장폐지가 결정되면 이를 따르기로 했다. 현재는 실질 심사를 중단한 후 개선 기간을 먼저 부여한 뒤 이를 해소하고 다시 실질 심사를 진행하는 등 절차 지연의 문제가 있었다. 코스닥에 이어 코스피 상장사도 인적분할 후 신설 법인을 상장할 때 존속법인이 매출액·당기순이익 등 최소 요건 등을 충족하는지 실질 심사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상장폐지 제도 개선은 별다른 법률 개정 없이 한국거래소 세칙·규정만 바꿔 당국 의결을 거치면 되는 만큼 속도감 있게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상반기 중 개정 작업을 마무리하고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 시행한다. 시가총액 미달은 내년부터, 매출액 미달은 내후년부터 강화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상장사들이 대응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부 상장사는 최근 3년 동안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적이 없는 데다 감사 의견에 문제가 없고 배당마저 꾸준히 이어가고 있지만 시가총액 기준에는 못 미친다. 이날 김준만 코스닥협회 상무는 “매출이 700억 원대라도 시장 관심을 받지 못해 시가총액이 300억 원에 못 미치는 건실한 기업도 퇴출될 수 있다”며 “시가총액 상장폐지라도 이의 신청 기회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상장폐지 요건을 강화하는 만큼 투자자 보호를 위해 보완책을 마련했다. 상장폐지 기업의 비상장주식을 거래할 수 있도록 비상장주식 거래 플랫폼을 활용하고 상장폐지 사유로 거래정지될 경우 투자자에 대한 정보 제공을 확대하도록 개선 계획의 주요 내용을 공시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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