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000670)·MBK파트너스와 경영권 분쟁 중인 최윤범 고려아연(010130) 회장이 사실상 마지막 승부수로 자사주 공개매수 카드를 꺼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베인캐피털·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등 재무적투자자(FI)로부터의 자금 조달에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시기는 MBK의 공개매수 마지막 날인 10월 4일이 유력하다. 다만 자사주 매입을 하기 위해서는 법원 판단이 전제돼야 한다. 특히 자사주가 주주가치 제고가 아닌 특정 주주인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쓰이게 되면 배임 논란이 커질 수밖에 없다.
3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지난주 4000억 원어치 기업어음(CP) 발행을 확정하고 메리츠증권으로부터 3000억 원을 대출 받기로 하는 등 자본시장에서 약 7000억 원을 조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회사 내부에서는 현금성 자산과 단기 투자 자산 등을 합해 최대 2조 원가량을 자사주 매입 실탄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고려아연이 이처럼 자사주 매입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자금 확보에 나서는 것은 최 회장 측 경영권을 방어할 마지막 방법으로 해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의 백기사로 거론된 베인캐피털은 최근 투자 심의를 했지만 구조가 쉽지 않다고 보고 의사를 접은 것으로 전해졌다. KKR 역시 어려운 분위기다. KKR은 심사가 더 까다로운 바이아웃(경영권 매각) 펀드에서 투자를 검토중인데 실사 보고서 없이 자금을 넣기 힘들기 때문이다.
재계 내 우호 세력으로 분류됐던 한화그룹은 순환 출자와 배임 이슈로 자금 투입을 망설이고 있고 최 회장 개인적으로도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 회장이 여러 증권사를 다니며 요청했지만 담보 여력이 없어 대부분 투자심의위원회 통과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고려아연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이 결정하는 자사주 매입 금지 가처분 결정에 사활을 걸고 있다. MBK·영풍은 13일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을 금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낸 바 있다. 결정은 10월 2일 나오는 것이 유력하다. 법원이 고려아연 측 손을 들어주면 경영권 다툼은 장기전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증권가는 고려아연이 유통 물량 중 약 6%를 취득하면 현재 33.1%를 보유 중인 영풍 측 지분율이 과반을 넘기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분석한다. 최 회장이 주당 80만 원에 대항공개매수에 나선다면 6% 확보에 총 1조 3000억 원이 필요하다.
자사주 취득은 자사주 공개매수와 일반적인 자사주 매입으로 나뉜다. 자사주 공개매수는 통상 공개매수가 근처까지 주가가 상승하기 때문에 주가 부양에 더 방점이 찍힌다. 자사주 매입보다 더 유연하기도 하다. 예를 들어 자사주 신탁계약을 체결한 뒤 기간을 정해 주당 어느 수준에서 사겠다는 매입 계획 공시를 내 투자자들이 MBK의 공개매수에 응하지 못하게 하는 전략인 셈이다.
실제 국내에서 최근 3년 간 실시된 자사주 공개매수는 총 4건(에스앤디·일신방직·한화솔루션·KX)이 있었다. 다만 이 회사들은 경영권 방어 목적이 아닌 주주가치 제고 목적으로 자사주 공개매수를 실시했다.
즉 MBK·영풍 쪽에서는 기각 결정이 나오더라도 향후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고들 가능성이 남아 있는 셈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회사 자금으로 특정 주주인 최 회장 개인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높은 가격에 자사주를 취득하는 것은 회사에 금전적 손해를 끼치는 행위로 배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가 보다 높은 가격의 공개매수가로 산다는 것을 자기주식 취득을 가장해 회사 재산에 손해를 끼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또 다른 변호사는 “논리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배임을 피해갈 방법이 없지는 않다”고 말했다.
4일에 자사주 공개매수를 시작하면 MBK의 공개매수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법원 판결과 무관하게 강행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된다.
반면 법원이 영풍·MBK 측 손을 들어주면 공개매수 성공 가능성은 높아지고 향후 이사회 다툼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 측 자금 확보가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날 고려아연 주가는 전일 대비 3.23% 하락한 68만 8000원에 장을 마쳤다. 공개매수가 시작한 첫날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특히 최 회장 쪽 자금 조달을 책임질 것으로 알려졌던 한국투자증권의 투자 심의가 부결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주가는 낙폭을 키웠다.
이에 대해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종 청약 물량이 MBK측이 제시한 최대 매집량(14.5%)을 넘어서면 안분비례 방식이 적용돼 헤지펀드가 추가 장내 매집을 중단할 것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반면 또다른 IB 업계 관계자는 “고려아연이 곧 자사주 매입 카드를 쓸 것으로 알려지자 청약물량이 MBK 측의 최소 제시량(6.9%)에 미치지 못할 것이란 관측 탓에 주가가 빠지는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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